본문 바로가기

Think_Room/link_world news

이 사람, 부자들을 낯뜨겁게 하다… ‘짠돌이’ 경비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가입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하며 모은 돈 1억원을 기부한 김방락씨가 25일 서울 종암동 자택 앞 버스정류장에서 사연을 털어놓고 있다.



“아저씨, 여기 경비원 중에 김방락씨라고 아세요?” 25일 서울 대학로 한성대 에듀센터 주차장에서 경비원 박병화(70)씨를 붙잡고 물었다.


“알지. 나랑 같은 조인데, 왜?”


“김방락씨가 1억원을 기부하셨는데, 혹시 알고 계셨어요?”


“뭐어?(깜짝 놀라며) 그 짠돌이가?”


10년째 한성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방락(67)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627번째 회원이 됐다. 평생 꿈꿔온 ‘1억원 기부’를 이루려고 스스로 고단한 일상을 택했고 ‘10년의 땀’을 그대로 이웃에게 내줬다.


박씨에게 물어 찾아간 집 앞에서 김씨를 만났다. “박씨 아저씨는 모르고 있던데요”라고 하자 그는 “성경에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지 않냐”며 웃었다. 김씨는 그런 거액을 기부할 만큼 부유해 보이지 않았다. 낡은 모자에 오래된 점퍼, 쭈글쭈글한 손의 주름…. 


별일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그에게 무작정 “왜 그러셨냐”고 물었다. 김씨는 “경비원 직업을 가진 사람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며 어려운 사람을 무척 많이 봤다. 몇 해 전부터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너 소사이어티란 게 있다는 걸 알고 돈을 모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김씨는 이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김씨의 이력은 대강 이렇다. 전북 정읍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홍수라도 나면 한 해 농사를 망쳐 온 가족이 굶어야 했다. 초등학교도 간신히 마쳤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삶은 혈기 왕성한 스무 살 청년을 군대로 이끌었다. 공수특전단에서 8년간 군 생활을 했고, 월남전에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이어 국방부 군무원으로 26년간 근무했다.


고된 삶은 그에게서 잘 떠나지 않았다. 1974년 몸이 좋지 않아 제대해야 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공사판을 전전하고 장사도 해봤다.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이때부터라고 한다. “너무 힘들게 살아서 다른 사람들 아픔을 알겠더라고. 내가 힘드니까, 그걸 알겠더라고….”


서울로 온 김씨는 신문 광고를 보고 군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26년간 건축담당관으로 일하다 2005년 정년퇴임했다. 경비원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연금 덕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됐고 자녀도 다 결혼시켰는데, 굳이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주변 이웃을 돕는 소소한 기부는 늘 해왔지만 더 큰 나눔의 손길을 세상에 내밀고 싶었다고 한다.


경비원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한다. 꼬박 하루 동안 순찰과 출입자 관리를 하고 수시로 센터 주위를 청소한다. 그렇게 한 달 일하면 120만원이 들어온다. 경비실에서 버너에 밥 해먹으며 고생해 버는 이 돈을 10년간 한 푼도 안 쓰고 차곡차곡 저금하니 1억원이 모였다.


목표액이 채워지자 모금회를 찾아갔다. 결심이 흔들릴까 봐 가족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우선 1000만원을 냈고, 다음 달 2000만원을 내고, 내년 말까지 1억원 기부를 완료키로 했다. 돈을 넣어둔 적금과 예금의 만기일이 다 달라서 그렇다. 모금회는 이날 그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을 열었다.


김씨는 기부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일단 저지르라”고 조언했다.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나중에 후회한다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다 기분 좋은 일을 왜 안 합니까?” 그는 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민일보

원문 보러가기